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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연원민
작성일 26-09-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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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대통령의 목소리보다 커져야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이 산업현장에서 동료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작고 말랑말랑한 아이를 만지며 목욕시킬 때, 내 품에 폭 안겨 잠들 때, 해맑게 웃어줄 때, 힘들어도 아이를 보고 싶고 볼을 부비고 손을 잡고 싶다. 2020년 10월 12일 박미숙·장광 부부는 그런 소중한 아들을 잃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한 장덕준씨다.
박미숙씨 핸드폰에는 아들 전화번호가 '든든한놈'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부부가 싸우면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손에 쥐여 주며 소주 한 잔 먹고 오라 하고, 초밥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배에 태워 일본에 데려갔다. 술을 먹으면 늘 과자를 사 오던 아버지를 따라 막냇동생에게 줄 과자를 사 오기도 했다. 오빠가 사준 마지막 과자는 웨하스였다.
다정하고 성실했던 장덕준씨는 쿠팡의 노동환경을 바꾸고 싶었다. 노동강도가 높아 매일 출근하지 못했던 동료들에게 밥을 사기 시작했다. 정작 본인은 주 5~6일 노동을 견뎠다. 2년을 앞두고 번번이 잘려 나가는 동료들을 대신해 반드시 무기계약직 전환을 이루고 싶었다. 풀빵을 나누던 전태일이 떠오른다. 성실하게 일했더니 살이 15kg 빠졌다.
쿠팡은 장덕준씨가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 죽었다고 했다. 2025년 12월 17일 SBS 보도에 따르면, 쿠팡 김범석 대표는 시급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리 없다며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장덕준의 죽음과 쿠팡의 관계를 가리기 위한 산재 은폐 시도였다. 사건을 담당했던 근로감독관들이 쿠팡의 산재 은폐 시도에 협조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쿠팡을 상대로 기획 감독을 벌였지만 4개월 지난 지금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장씨의 부모는 산재 은폐를 지시한 김범석 처벌과 쿠팡의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전국물류센터를 순회하고 서울고용노동청 앞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감사원에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쿠팡의 산재 은폐를 방조했다며 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쿠팡과 정부에 태도로 인해 박미숙과 장광은 노동 안전 활동가가 됐다. 지난 1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1인 시위를 마친 두 사람을 만났다. 부부는 김범석을 만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도 계획 중이다. 박미숙씨는 "덕준아, 네가 준 숙제 잘하고 있어, 끝나고 나서 칭찬 받을게"라고 했고 장광씨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챗GPT에 장덕준이라고 치면 몇 자라도 나온다, 너에게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남을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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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밥을 사주며 챙겼던 동료들이 안전하게 퇴근하길 바라며 두 부부는 오늘도 피켓을 든다.
자식이라기보다는 친구였죠
▲ 박미숙 장광 부부는 쿠팡의 산재은폐를 제대로 수사하라는 1인시위를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 공고운수노조
- 장덕준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닌, 박미숙 장광의 삶이 궁금합니다.
장광 "영남대 전기과 81학번으로 입학했어요. 취업 걱정은 없던 시절인데, 직장 생활이 잘 안 맞았어요. 컴퓨터 학원이 잘나갈 것 같아 학원 일을 배우러 갔어요. 거기서 강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났죠.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해요. 인테리어도 하고, 현수막 실사 사업도 해보고, 택시 기사로도 살았고, 양돈업 기자재 사업도 해봤어요. 그러다가 소목을 배워 공방을 차렸어요."
박미숙 "87년에 영남이공대(영남공전) 전산학과에 들어갔어요. 80년대에 여자가 잘 가는 과는 아니었는데, 동생이 전산학 괜찮다고 해서 갔죠. 막상 가서 후회 많이 했어요. 그래도 기계는 잘 다룹니다.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 선생님으로 취직해서 도스 같은 걸 가르쳤어요. 남편이 학원 차릴 거라고 매일 오더라고요. 썩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웃음)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네요. 결혼 후 비디오 가게도 해보고, 우유배달, 섬유 공장, 식당, 안 해본 일이 없어요."
- 장덕준씨는 어떻게 자랐을까요? 다른 인터뷰를 보니 아들을 스승 같고 친구 같았다고 하셨습니다.
박미숙 "집안에 남자애가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경상도는 남아선호가 있었어요. 아들이라고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잔뜩 기대했죠.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어요. 어른들이 계속 안고 계시니깐 애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적이 없어요. 걸음이 늦을 정도였어요."
장광 "부부싸움 하면 냉랭해서 밥도 안 먹는 경우 있잖아요. 그러고 있으면 덕준이가 와서 '아버지 자존심 싸움 하지 마세요. 쓸데없는 걸로 굶지 말고 나가서 밥 먹어요' 애인가 어른인가 구분이 안 돼요. 제가 술이랑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덕준아 소주 한잔 하자, 밥 먹으러 가자'이러면 눈 비비면서 따라 나와요. 거절을 안 해. 덕준이가 떠나고 이제 혼자 밥 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박미숙 "아버지가 술을 워낙 좋아하니깐. 소주 한 병 이상을 마시면 애가 뺏어 먹었어요. 아버지 술 적게 드시라고."
- 20대 초반인데 말과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네요.
박미숙 "덕준이 6학년 때까지는 시집에서 어른들이랑 같이 살았어요. 경상도에 장남이니 그런 영향이 있겠죠. 말이 통하고부터는 아들이랑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자식이라기보다는 친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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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도 뒷말 걱정 없는 편안하고 믿음직한 친구. 부부싸움 하면, 자기 주머니 돈을 털어 술 한잔하고 오라고 쥐어줘요. 동생들 앞에서 싸우고 집안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장광 "내가 초밥 좋아하니깐 2018년에 덕준이가 후쿠오카에서 초밥 사준다면서 따라오래요. 비행기 타고 가나 했더니 부산으로 데려가서 배를 태워요. 일본 가서 목욕하고 초밥 먹고 돌아왔어요. 무박 3일. 경비를 보니깐 왕복에 7만 원. 초밥도 시장 바닥에 의자 몇 개 있는데 쪼그리고 앉아 먹었어요. 집사람이 덕준이한테 싫은 소리 하면 다시는 안 데려갈 거라고 조용히 다녀오라 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진짜 힘들었어요. 돈 없어도, 아버지 해외 데리고 가는 아들이었죠."
박미숙 "14살 터울의 막내가 있는데 짱구 팬이었어요. 짱구마을에 가고 싶다 해서 덕준이가 막내랑 저랑 데리고 도쿄도 다녀왔어요."
장광 "싱가포르도 가자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가지 말고 돈 모아서 1년 뒤에 편안하게 가자고 했어요. 결국 싱가포르는 못 가게 됐네요."
이동 동선 파악하기 위해 도면까지 그려
▲ 장덕준씨의 아버지 장광(왼쪽)씨와 어머니인 박미숙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 다정하고 행동력 있는 든든한 아들이었네요.
박미숙 "제 핸드폰에 '든든한놈' 이라고 저장해놓았어요. 애랑 있으면 겁날 게 없었어요."
- 그런 기질 때문에 장덕준씨가 쿠팡 물류센터에서 견뎠겠죠?
박미숙 "처음에 동료들한테 집이 가난하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덕준이가 쿠팡 물류센터에 5~6일 출근하니깐 집이 엄청 가난한 줄 알았대요. 책임감이 강했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 2020년 10월 12일 아들을 잃으셨습니다.
장광 "애가 새벽에 퇴근하고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갔다가 안 나와요. 아내가 들어가 보라고 했어요. 문을 열었더니 쓰러져있는 거예요.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피도 많이 흘렀어... 병원에서는 얼굴색이 돌아와서 죽는다는 생각은 못 했죠. 그 뒤로 앰뷸런스 소리만 들려도 30분 동안 넋 놓고 있었어요. 피도 무서워서 못 봐.
쿠팡은 산재를 부정했는데, 근로복지공단에서 2021년 2월에 산재 승인을 했어요. 이걸로 마무리됐나 싶었는데 도저히 마음이 해소가 안 되는 겁니다. 아내는 민사소송을 시작했고요. 덕준이 생각나면 일도 못 하고.
몇 개월 동안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건설 현장 일을 시작했어요. 새벽 6시에 나가서 5시에 들어와 소주 한 잔 먹고 자는 거예요. 이런 생활을 1년 동안 했어요. 그래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럴 바에 차라리 전국을 돌며 쿠팡에 대해 알려보자고 순회 투쟁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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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사망 직전 CCTV를 보면서 발걸음 수를 하나하나 세셨어요.
박미숙 "남편한테 산재 승인 나면 그만한다는 각서를 다섯 번 썼어요. 지키지 않았죠.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증거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CCTV는 받았는데 양 자체가 방대했어요. 누구한테 맡긴다고 한들 물류센터 사정을 모를 테니 제대로 볼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저밖에 없죠.
공방에서 CCTV를 틀어서 보는데 재판부를 설득할 장면을 찾았어요. 애가 일 끝나고 나면 쿠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5만 보 걷는다고 사람들한테 이야기했는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어요. 저는 애 말을 믿고 영상을 본 거죠."
- 얼마나 보셨나요?
박미숙 "23년 11월에 받아서 25년 1월까지 봤어요. 쿠팡은 가벼운 물건만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중량물 취급하는 거 찾아내고, 발걸음 수 추리고, 이동 거리 계산했어요. CCTV는 거대한 물류센터의 한 부분이니깐 덕준이가 나타났다 사라져요. 이동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도면까지 그렸어요."
김범석 멱살이라도 잡고 욕이라도 하고 싶어
▲ 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씨가 숨지기 직전 근무했던 2020년 10월 11일 CCTV 영상. 장씨가 가슴을 움켜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CCTV로 죽은 아들을 계속 본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박미숙 "CCTV에 애가 나오면 서너 시간은 멍하니 봐요. 마음 다잡고 계속 돌려가면서 동료들한테 들었던 당시 상황에 대한 것들, 가슴 움켜쥔 장면 같은 걸 찾았죠. 영상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니깐. 좋기도 하고, 쟤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냐. 제발 좀 쉬어라. 쓸데없이 책임감만 강조를 해가지고 내가 잘못 교육시켰구나라고 자책했죠."
장광 "한 번은 쿠팡 언제까지 다닐 건데 물어봤어요. 덕준이가 2년 무기계약직이 되고 나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2년 무기계약직 앞두고 대부분 잘렸대요. 자기처럼 근태를 잘하면 쿠팡이 어떻게 할 건지 보겠다고 했어요. 덕준이 방식대로 쿠팡과 투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 해보라 했거든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죠. 근데 무기계약직 몇 개월 남기고 죽으니깐, 화가 났어요. 조금만 더 견디지! 밉더라고. 덕준이 죽고 나서 덕준이 방에서 잤어요. 그런데 원망하는 마음이 드니깐 덕준이 사진을 딱 덮어놓고 살았어요.
투쟁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이제는 떳떳하게 덕준이 사진 꺼내놓고 마음껏 얼굴 봐요. 덕준이가 쿠팡과 싸우던 걸 내가 이어서 대신 싸운다 생각하니 마음이 정리기 됐어요. 이제는 웃으면서 투쟁하자고 생각 중입니다. 그 좋아하는 술도 끊었어요. 술 먹고 제가 동지들한테 말실수하고 이럴까 봐. 김범석 잡을 때까지 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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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동지들이 술보다 좋습니다."
- 김범석의 산재 은폐 지시가 충격적이었어요.
박미숙 "쿠팡과 민사재판 합의까지 5년이 걸렸어요. 모든 재산을 날리면서 투쟁했죠. 쿠팡 청문회 앞두고 합의를 했는데 쿠팡 노동환경의 근본적 변화는 없었잖아요. 그래서 두 달 정도 앓아 누웠어요. 처음에 SBS 기자로부터 김범석이 한 이야기를 듣는데 심증은 있었는데 증거가 없었던 게 드디어 밝혀지는구나 생각했죠. 김범석이 직접 산재 은폐를 지시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으니 이건 철저히 조사하고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투쟁을 시작했죠."
- 개인정보 유출을 계기로 쿠팡에 대한 대대적인 제재가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용두사미로 끝났어요. 2021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쿠팡 노동자들의 아픔이 또다시 묻힐까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박미숙 "예측했어요. 6년 전 상황과 다를 바가 없어요. 2020년 10월에 덕준이 사망하고, 2021년 6월에 이천 물류센터 화재가 나면서 쿠팡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야당 의원들이 쿠팡을 고쳐보겠다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김범석 산재 은폐 사건, 개인정보유출 사건, 7월 화재 사건, 지게차 사고 계속 일이 벌어져도 똑같잖아요."
장광 "당시 쿠팡 나쁜 기업이다 했던 야당 의원들이 여당 국회의원이 되셨잖아요. 그런데 미국기업이다 하니깐 진척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다양한 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해주니깐 힘이 납니다."
- 트럼프의 통상 압박도 정부가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쿠팡 본사 미국 원정 투쟁도 계획하고 있나요?
박미숙 "가야죠. 김범석 집으로 가고 싶어요. 멱살이라도 잡고 욕이라도 하고 싶어요."
장광 "김범석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그 사람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노동자는 없는지."
덕준이가 바꾸고 싶었지만 끝내지 못한 숙제
▲ 박미숙 장광 부부가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과 피켓팅을 하고 있다.
ⓒ 공공운수노조
-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전국 물류센터를 돌고 계십니다.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셨나요?
박미숙 "처음에 덕준이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왜 매일 일을 안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자기가 일을 해보니깐 너무 힘들어서 연속 출근이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본인은 주 6일 출근하면서. 자기가 번 돈으로 친구들과 동생들한테 밥을 사주기 시작했어요. 덕준이 친구들한테 당신들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내가 게을러서 4~5일 일하는 걸 못 버티는 게 아니라, 못 버티는 구조를 만든 쿠팡이 문제라고요. 당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장광 "법에 하루 8시간 주 5일 정해놓은 이유가 있잖아요. 법에 정해진대로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는 직장이면 문제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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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준이가 병도 없고 건강했는데 1년 4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단 말이에요. 이건 얘가 못나고 얘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덕준이가 몸을 던져 물류센터의 현실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휴식 시간, 냉난방시설 등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들도 위험해요."
- 평택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김승모 부모님과도 함께 연대하십니다.
박미숙 "저희 같은 고통과 상처들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죠. 첫째를 잃어도 남은 자식들을 지켜야 해요. 덕준이가 동생들을 정말 사랑했어요. 아빠가 술 먹으면 항상 아이들의 과자를 사 들고 왔어요. 그 모습을 똑같이 보고 배웠어요. 덕준이가 막냇동생 주려고 웨하스를 들고 왔거든요. 그게 마지막으로 사준 과자예요. 덕준이가 동생과 부모가 고통 속에 사는 걸 바라지 않을 거라 남은 사람이 잘 살아야 해요.
그런데 아들의 죽음이 지워지는 게 아니라 생생하게 또렷하게 기억나요. 그래서 막내한테 오빠 사망에 대해서 싸워야 해, 이렇게 못 보내겠어라고 했더니 딸이 '난 평생을 봐온 사람이야'라고 하더라고요. 둘째는 빈소에서 떠나지 않고 밥도 못 먹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둘째가 부모를 챙기는 거예요. 자기가 첫째 노릇해야 한다 생각한 건데, 이 모습들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장광 "누가 해줄 거라 가만히 있었거든요. 포기하지 마시라고, 가만히 있지 마시라고, 억울하면 억울하다 말하라고 전하기 위해 유족들 만나는 데 따라가고 있습니다."
- 장덕준씨가 고생하는 가족들을 보면 마음이 안 좋겠습니다.
박미숙 "아니에요.(웃음) 우리가 덕준이를 알잖아요. 김범석 산재 은폐사건 터졌을 때 덕준이가 아직 만족이 안 되는갑다, 농담을 했어요. 제가 쿠팡과 찜찜한 합의를 하고 두 달을 앓았다고 했잖아요. 이게 안 밝혀질 수도 있는데 덕준이가 엄마 아프지 말라고 다시 쿠팡과 싸워달라고 도와준 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 끝내지 말고 계속 가라고. 그래야 부모가 사니깐."
- 마지막으로 장덕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박미숙 "덕준이가 살았을 때 쿠팡의 문제를 많이 들었어요. 블랙리스트, 동료를 비난하는 환경 이라던지. 다 합쳐서 옮긴 물건 무게만 1톤이라 하고요. 생전에 덕준이가 했던 이야기들이 다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요. 저희한테 숙제로 돌아온 거예요. 덕준이가 바꾸고 싶었지만 끝내지 못한 숙제요. 자기 몸으로 증거를 남겨줬다고 봐요. 제가 끝까지 마무리해 주기를 바랄 거예요.
'덕준아, 네가 준 숙제 잘하고 있어, 끝나고 나서 칭찬받을게, 피하지 않고 끝까지 갈게.' 시민들에게도 한마디하고 싶어요. 내가 편하다고 느낄 때 반대편에서 나의 편리함을 위해 힘듦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해요."
장광 "덕준아, 네 엄마가 열심히 한다. 아부지가 좋아하는 챗GPT에 장덕준이라고 치면 몇 자라도 나오더라. 덕준이에게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은 부모로 남을게."
경상도는 남아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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